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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120주년 기념] 권태건의 내러티브 리포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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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건 기자 입력 2024.01.2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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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리배에서 내린 천사들 ... 서울위생병원 제주분원
제주 사람들은 서울위생병원 의료진을 “아가리배’에서 내린 천사”라고 불렀다.

“생각해보니 ‘아가리배’에서 내린 그 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온 천사였어요!”


‘아가리배’는 1951년 1월 당시 재림성도와 피난민들을 싣고 온 LST(Landing Ship Tank) 수송선을 부르는 제주도민들의 말이다. 뱃머리 문 열리는 모습이 마치 아가리(입)를 벌리는 것처럼 보여 붙인 이름이다.

 

아가리배가 수송선을 가리킨다면 그 배에서 내린 천사들은 다른 아닌 재림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기자는 김태자 어르신(83, 성산읍 고성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아가리배에서 내린 그 사람들이 바로 그 다음날부터 동국민학교(현 성산초등학교) 교실 한 칸에 진료소를 차리고 주민들을 진료하기 시작한 거예요. 분명히 그 사람들도 전쟁을 피해 여기까지 왔을 텐데 그렇게 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그러니까 그 모습이 천사처럼 보인 거죠”


삼육대 신학과 오만규 전 교수는 <한국 재림교회 100년사>에서 당시 진료소를 ‘서울위생병원(현 삼육서울병원) 제주분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태자 어르신은 자신을 비롯해 성산 지역주민 중 그때까지 현대적인 병원 진료나 예방주사를 접종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서울위생병원 제주분원을 통해 처음 접했다는 증언이다. 이전에는 그저 배가 아프면 숯가루 탄 물을 마시는 등 민간요법에 기댔을 뿐이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김태자 어르신은 “외국인을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외국인 간호사가 DDT를 놔줬지요”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차에 올라가 다음 인터뷰이를 찾아가는 길, 다시 오만규 전 교수의 책을 꺼내 기록을 살폈다. 류제한 박사의 부인인 류은혜(Grace Rue) 여사 역시 간호사였으니, 어쩌면 류 여사를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기록을 들춰보니 당시 간호원장인 리보순(Robson)씨 역시 외국인이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외국인이었던 그들이 전쟁 발발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제주까지 내려와 의료봉사를 하는 모습이 당시 김태자 어르신의 눈에는 한없이 신기하고 고마웠을 것이다. 당시 외국인선교사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나라에서 봉사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다.


현춘홍 어르신(88, 성산읍 오조리)이 기억하는 당시 재림성도의 모습은 한층 더 드라마틱했다. 그는 “안식일교인들이 성산을 살렸다”고 표현했다. 당시는 콜레라 같은 괴질만 걸려도 생명이 위독한 때였다. 만일 맹장이라도 터지면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던 것이 보통이었다. 


그랬던 성산에 서울위생병원 제주분원이 문을 열고 약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더이상 괴질이 주민들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했다. 개복 수술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주민들에게 맹장수술을 펼쳤다. 예전 같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병에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이 입에서 입을 타고 퍼지자 멀리 모슬포에서도 진료를 받기 위해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많게는 하루 350명이 진료를 받았으며, 장날에는 그 수가 600명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현춘홍 어르신은 당시의 진료소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리고 성산포 피난교회가 세워지기 전까지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성산 일출봉의 풀밭에 앉아 찬미하고 말씀 듣던 그 시간을 참으로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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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물론 마을의 어른들은 현충홍 어르신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제사를 지내지 않고 미신을 멀리하는 교회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은 조상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예의 없는 일로 풀이했던 까닭이다. 그래서 교회에는 6개월밖에 출석하지 못했고, 피난교회 예배당에서는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도 어깨에 돌덩이를 이던 남자 교인들과 치마폭에 모래를 담아 나르던 여자 교인들의 모습은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던 어르신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입을 뗐다. 


“육군사관학교를 다니기 위해 뭍으로 나갔어요. 꽤나 시간이 흐르고 나이도 좀 먹은 다음이었죠. 하루는 서울 청량리를 지나는데, 너무 익숙한 이름을 보게 된 거예요. 바로 ‘위생병원’이었어요. 난 그때까지 어렸을 때 봤던 위생병원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정말 우연이었어요. 위생병원이란 이름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아가리배에서 내린 천사들이 펼친 봉사가 그들에게 어떤 감동을 줬는지 기자로서는 추측할 수조차 없었다. 다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 순간에도 현춘홍 어르신의 마지막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의 이야기를 들으러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이야기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잖아요”


그날 저녁 강관규 장로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인터뷰하기로 약속한 어르신께서 응급실에 입원하셨고, 경과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다음에 계속 - 


* 이 기사는 <삼육대학교>와 <삼육서울병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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